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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가족 - 그들은 누군가의 삶이며, 일상이다.

미도 삼춘 발행일 : 2014-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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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실패한 중년 인생이다.



첫 영화감독 데뷔작이 흥행에 참패한 이후,

제작자와 투자자를 말아 먹고,

신용불량자에 빚 독촉에 시달리며,

그는 알코올 중독자가 된다.





그는 낭떠러지에 몸을 날리는 선택밖에 없을 때, 

어머니의 닭죽 먹으러 오라는 전화에 -

깡패 형이 이미 얹혀 사는 엄마 집에 들어가고,

나중엔 바람난 여동생에

싸가지 여조카까지,


24평 연립주택에 얹혀 살게 되면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작가  천명관

출판  문학동네

발매  2010.02.18





그들도 처음부터 이러지 않았다.

모두 어떻게든 살아가든 스스로 삶을 책임지며 살아갔다.

그러나 인생은 어떻게 되는지 모르는 법이다.

그러한 내리막길에 아무리 기댈 곳이 없어 힘든 상황에서도

이 소설에서 엄마라는 존재는 우리를 언제나 받아주고,

보담아주는 그런 존재이다. 


그녀에게는 삶은 전쟁과 다름없으며

자식들은 그런 전쟁 같은 세상에 뛰어드는

언제나 어린 내 자식일 뿐이다.

소설은 엄마로 시작하고 엄마로 끝맺음한다.




'그건 전쟁 때 얘기고 지금은 다르잖아.'

'다르긴 뭐가 달라. 난 그때나 지금이나 다를 거 하나 없다.'


엄마는 단호했다. 

하긴 그녀에게 일평생이 전쟁을 치르는 것과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가난한 살림에 아이 셋을 키우고, 남편을 수발하고,

홀몸이 되어 큰아들 옥바라지로 한 세월을 보내는 과정이 

전쟁보다 하등 나을 것도 없었을 터,

전쟁통에 학도병으로 끌려가서도 멀쩡하게 살아 돌아왔던-

아버지가 승용차에 치여 죽기까지 했으니까 말이다.




자식들이 장성해 머리가 희끗해져가는 중년이 되었어도

엄마 눈엔 그저 노란 주둥이를 내밀고 먹을 것을 더 달라고 짖어대는

제비새끼들처럼 안쓰러워 보였을까? 

그래서 비록 자식들이 모두 세상에 나가 무참히 깨지고 돌아왔어도

그저 품을 떠났던 자식들이 다시 돌아온 게 기쁘기만 한 걸까?






24평 작은 연립 주택에 5명의 식구가 치고 박고 지내는 소설을 읽다 보면 

자주 언급되는 부분이 있다. 바로 헤밍웨이와 영화다. 



주인공은 헤밍웨이를 자신의 처지와 비교하며, 

영화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영화 고령화 가족에서는 언급되지 않는 부분이다.



그 외에 영화에서 결말도 다르게 표현을 하는데, 

비교하며 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가 될 듯하며,

소설에 등장한 감독의 영화나, 

언급된 영화를 찾아서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헤밍웨이의 초기 단편 가운데 킬러란 작품이 있다.

킬러들이 노리는 것은 올레 앤더슨이란 스웨덴 출신의 전직 권투선수이다. 

누군가 올레 앤더슨을 찾아가 킬러들이 그의 목숨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하지만 그는 도망칠 생각도 없이 무력하게 침대에 누워서 죽음을 기다린다.


'알려준 건 고맙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네.'

'그것은 내가 밖으로 나갈 마음이 전혀 없다는 거야.'


내가 가진 문제는 올레 앤더슨과 같은 무기력증이었다.









아무튼 이건, 가족 소설이다. 

그들은 결국 서로를 위했으며, 서로를 위해 나섰다.


그들은 결국 내리막길에서 마주했지만

다시 오르막길로 갈 길을 가게 된다.


소설 내에 다양한 에피소드도 있으며,

피식 잼을 유발하는 재미도 가지고 있고 쉽게 읽힌다.


가볍게 웃으면서 보기에는 좋은 책이다.





그러나 나는 소설을 끝 장을 덮고 나니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다.

공감이 되기 때문. 그만큼 나도 지금 막장이며, 우리 가족도 평탄치 않다.



공감 되지 않기를 바란다.

조금이라도 공감 되지 않으면 나보다는 나은 삶이겠다.




천명관 작가의 말대로 


가정은 가정마다 모두 사연을 가지고 있다. 


이 소설에서의 사연 또한 있을 수 있는 진짜 삶임에는 분명하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가족 소설은 가족이 없는 사람에게는 어떤 의미가 되며, 

가족이 파탄 난 사람에게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재미있게 이걸 웃으면서 볼 수 있을까? 


그래서 가족 소설은 어떤 이에게 뼈 아픈 장르이다.



또한 우리나라 소설은 잘 읽지 않는 편인데,

박민규의 소설과 더불어 재미있게 읽었다. 


다른 소설도 기대하며, 

공감했던 소설 내 글 몇 줄 소개하며 글을 마친다.



책에서 얻다





인생에서 아무런 의미도 찾지 못하고 술에 찌들어 사는 동안-

어느 틈엔가 감정은 메마르고 사랑을 믿지 않는 괴물 ...... 

그게 바로 마흔여덟에 발견한 나의 모습이었다.




나는 사람들이 겉으론 멀쩡해 보여도 

다들 속으론 자기만의 병을 품고 살아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엄마가 말했던 인간적인 정리가 우리 사이에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것이 열정적인 사랑보다 더 차원 높고 믿을 만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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