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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터와 션 오코넬 처럼,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미도 삼춘 발행일 : 2014-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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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원래 영화 제목은 <월터 미티의 은밀한 생활>이다. 한국에 들어오면서 마케팅을 위해서인지 제목을 바꿔 버렸지만, 그 덕에 정말 상상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 현실로 되는 줄 알고 가서 보고 후회한 분도 계시는가 하면 대충 내용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일부러 가서 보신 분도 적지 않으실 것이다.


나 같은 경우는 후자로 대략 어떤 이야기인지는 알지만, 현재의 답답한 삶을 영화로 통해 해방구를 찾기 위해서인지 보게 되었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 월터 미티의 은밀한 생활



어느 이들은 말한다. 그들이 보통의 우리와 닮았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 보통의 우리는 이렇지 않다. 오히려 잘 놀러 다닌다. 인터넷 블로그와 내 주변만 봐도 해외여행도 어느 정도 놀러 다니고 기념사진을 잔뜩 올려놓고 타이틀별로 일본여행, 유럽여행, 각종 여행을 다녀왔다고 광고하듯이 자기를 홍보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을 추억이라고 부른다.



월터 미티와 사진작가 션 오코넬은 우리와 닮지 않았다. 내 관점에서 본다면 션 오코넬은 자기 가치관이 확고하며 나에게 존경할 만한 가치관을 가진 남자이며 월터 미티는 정말 도전 정신이 뛰어난 용기 있는 남자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이 영화를 보고 들의 삶이 멋있어 보인다고 그들처럼 행동할 필요는 없다. 충분히 우리는 우리 삶의 테두리 안에 얽혀 있을지 몰라도 그것은 있는 그대로 당신들은 멋지다. 그래서 션 오코넬은 마지막 LIFE의 타이틀 표지를 월터 미티로 쓴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삶이라 부른다. 우리는 그대로 충분히 가치가 있고 멋지다.



내가 션 오코넬이 정말 멋지다고 느낀 것은 그가 그리스인 조르바와 어느 정도 닮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사진을 찍을 때, 그냥 찍지 않을 때도 있다. 그 순간을 즐기는 것. 그 있는 그 순간. 이는 조르바가 모든 경치를 아름답게 느끼며 무한한 감탄을 하며 춤을 추는 것과 다르지 않다. 요즘 우리는 모든 것을 스마트폰으로 담으려고 정작 중요한 경치 그 자체 살아있는 우리의 그 공기를 놓치고 산다. 우리는 순간 순간을 버리고 있다.


하지만 션 오코넬은 그렇지 않다. 진정한 살아있는 것을 바라보는 존재이다.




영화의 월터 미티를 보면 직장인들의 현재의 변화 없는 똑같은 일상의 삶에 특별한 경험을 해보고 싶게 만드는 그러한 인물로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굳이 살면서 꼭 남들이 해보지 못한 일들을 해볼 필요는 없다. 여성들에게는 그런 남자가 인기 만점이기 하지만 (한국에서 오랫동안 생활하는 사람보다 외국 어디 어디 다녀왔다고 떠들어 대는 사람과 특별한 경험 해본 사람이 인기가 있는 당연하다.) 그건 제치고, 결국은 그가 말하던 것은 그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얼마나 그 삶에 가치 있는 집중도가 있는가? 일종의 몰입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이다. 뭐라고 쉽게 설명을 못 하겠지만, 우리가 하루하루 흐르는 그냥 보내는 삶이 있다면 그것은 삶에 몰입이 떨어지는 것, 좋아하는 여성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하지 못한다면 그것 또한 삶의 몰입이 떨어지는 것이라고 얘기하고 싶다.


비유하자면 사진기의 포커스처럼 우리는 그 순간을 매번 살아 있다고 느끼는 것. 그것이 나의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그영화를 통해 느낀 점이다.


나는 그러한 삶을 살고 싶고 그러한 사람이 될 것이다. 월터 미티와 션 오코넬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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